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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가 볼 만한 곳 (동해권)

HAPPY HAPPY HAPPY 2023. 6. 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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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의지를 상징하는 문무대왕릉을 비롯해 큰 용이 바다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견대(利見臺),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은 절인 감은사지(感恩寺址) 등이 있는 동해안은 이름난 문화유산권입니다.

 

1. 천연기념물 양남 주상절리군

양남면 주상절리군 해변에 1.7m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자연이 빚은 걸작품으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합니다. 주상절리군 전 구간을 트레킹 할 수 있는 파도 소리 길이 테마별로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서항과 읍천항 사이에 위치한 주상절리 전망대에서는 주상절리에 대한 자료와 함께 동해의 비경과 양남 주상절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2. 감포깍지길

감포읍에서 개설한 스토리텔링 코스인 감포깍지길은 대본리에서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걷거나, 내륙 쪽의 볼거리들을 아울러 둘러볼 수 있는 탐방로입니다. 해안 길·읍내골목길·바닷길 등 8개 구간으로 짜여 있습니다. 도보로는 감포항활어직판장~솟대길감포시장 등으로 이어지는 4구간을 추천할 만합니다.

 

3. 문무대왕릉 (죽어서 용이 된 왕의 바다 무덤)

죽은 뒤에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라 제30대 문무와(재위 661~681)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해중릉입니다. ‘대왕암으로도 불리는 문무대왕릉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후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와의 호국 정신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문무대왕릉은 바닷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길이 약 20m의 바위섬으로 이곳에는 인공으로 낸 수로가 있고 그 가운데에 조그마한 수중 못이 있습니다. 길이 3.6m, 너비 2.9m, 두께 0.9m 크기의 화강암을 얹어놓아 위에서 보면 십자형의 수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견대 (대왕암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

대왕암에 잠든 문무왕이 용이 되어 승천하는 모습을 본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온갖 파란을 없애고 세상을 평안하게 만든다는 만파식적을 얻은 전설로도 유명합니다.

 

*만파식적의 전설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안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이 용을 시켜 대나무를 보냅니다. 그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불자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며 바람이 멎고 물결이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왕은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습니다.

 

4. 기림사

기림사(祇林寺)는 신라 선덕여왕 12(643)에 창건한 절로 조선시대 31 본산의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임정사(林井寺)라 불렀으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확장하고 기림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경내에는 목탑지, 삼층석탑과 건칠 보살 좌상 등이 있으며 대적광전 등 건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을 기리는 매월당 사당이 있으며 감로수와 화정수, 장군수, 명안수, 오탁수의 다섯 가지 물(오종수)로도 유명합니다.

 

5. 골굴사

골굴사는 이름처럼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석회암에 12개의 석굴이 있으며, 암벽 제일 높은 곳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마애 여래 좌상이 있습니다. <기림사 사적기>에 따르면, 함월산의 반대편에 천생 석굴이 있고 굴을 열두 곳으로 구분하여 각기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하는데 골굴사는 기림사의 암자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선무도 공연

선무도는 깨달음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서 관법 수행법을 활용한 불교 무예를 뜻합니다. 선무도의 수련 방법에는 선요가, 좌관법, 입관법, 행관법이 있습니다. 선무도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골굴사에서는 정기적으로 선무도 공연을 관람객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6. 감은사지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었다는 절)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완성하였습니다.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佛力)으로 왜구를 격퇴코자 절의 이름을 진국사라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병이 들어 승려 지의법사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다라고 유언한 뒤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따라 화장 후 유골을 대왕암에서 장사를 지냈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고 명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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