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신라의 오악(五岳: 동안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 가운데 동악(東岳)에 해당되는 토함산은 예로부터 왜구의 침범을 막아준 호국(護國)의 진산(鎭山)으로 신성시되어 왔습니다. 토함산은 불국토(佛國土)의 이상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신라의 성산(聖山)입니다.

 

1. 불국사 (부처님의 영원한 궁전)

토함산 서남쪽에 자리 잡은 불국사(佛國寺)는 불국토의 이상을 조화와 균형으로 표현한 부처님의 궁전으로, 신라인들의 과학과 미학이 이뤄낸 통일신라 문화의 정수입니다.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이 현생(現生)의 부모를 위해 창건했다고 합니다. 불국사는 신라의 건축기술과 불교, 토함산의 수려한 자연 경관이 만들어낸 통일신라시대 사원 예술의 걸작입니다.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34계단으로 이루어진 다리로 위쪽의 청운교는 16계단, 아래쪽의 백운교는 18계단입니다. 위쪽 좌우에는 갑석이 있으며, 그 가장자리는 가볍게 들려서 신라 석탑 지붕돌의 그것과 비슷하며, 좌우로 이어진 석축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불국사 삼층석탑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동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한 쌍의 석탑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서쪽에 있는 탑을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이라 하여 석가탑(釋迦塔)이라 하며 높이는 8.2m입니다. 석탑 전체에 걸쳐 별다른 기교가 없이 간결하고 우아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대표작입니다. 196610월 석탑의 수리과정에서 무구정광 대 다라니경, 석가탑 사리 장치 등을 포함한 많은 유물이 나왔다. 아사녀가 아사달을 기다렸던 영지에 끝내 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 하여 무영탑이라고도 부릅니다.

*불국사 다보탑

통일신라시대 이형석탑을 대표하는 석탑으로 높이는 10.4m에 이릅니다. 석가탑과 마주 보고 있으며 두 탑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탑입니다. 다보탑은 과거불인 다보여래가 석가여래의 <법화경> 설법을 증명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통일신라 조형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세 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현재는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2. 석굴암 석굴 (하나의 석굴 안에 요약된 팔만대장경)

자연석을 다듬어 쌓은 돔 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751)에 김대성이 전생(前生)의 부모를 위해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 혜공왕 때 완성한 석굴사원으로 건립 당사의 명칭은 석불사였습니다. ‘돌로 비단을 짜듯 감실을 조성했다는 옛 기록이 말해주듯 거친 화강암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백미라 할 것입니다.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의 심오한 불교문화와 과학, 예술정신이 만들어낸 희대의 걸작입니다.

*본존불

석굴암 본존불상(석가여래불상)은 그 조각의 종교성과 예술성에서 우리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탁월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며, 전 세계 종교예술 사상 뛰어난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본존불의 석련대는 백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오묘한 형태와 정교한 조각 솜씨는 본존불의 기품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3. 영지 (아사달과 아사녀의 가슴 아픈 사랑이 서린 곳)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영지는 불국사로부터 서쪽으로 4km 떨어져 있는 저수지로, 못 남쪽에는 아사달이 아사녀의 모습을 조각했다는 영지 석불좌성이 있습니다.

 

4. 원성왕릉 (가장 완비된 형식의 신라왕릉)

이 능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을 모신 곳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곡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현재의 숭복사 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왕릉을 만들었습니다. 별칭으로 괘릉(掛陵)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덤의 구덩이를 팔 때 물이 괴어 널을 걸어 묻었다는 조선시대 민간신앙이 결부된 전설에 따른 것입니다. 봉분에서 약간 떨어진 좌우에 화표석·문인석·무인석·돌사자를 마주 보게 세웠으며, 무인석은 서역인 혹은 페르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