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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역사

HAPPY HAPPY HAPPY 2023. 6. 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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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reamtime 드리밍 시대

애버리진으로 불리는 호주의 원주민은 약 4~6만 년 동안 채집과 수렵 생활을 하며 호주 대륙에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인의 상륙 이전에는 약 500여 개로 나뉜 씨족(Clan)100만 명가량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각의 씨족은 대지(大地)와 영적인 관계를 맺고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대륙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생활 방식을 영위했으며 씨족별로 언어와 관습이 모두 달랐습니다. 애버리진의 신화에 의하면, 조상의 영혼은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과거, 현재,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며, 이를 드리밍이라는 추상적이면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원주민 신화는 노래와 춤, 그림 혹은 구전으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인의 상륙 이후 외부에서 유입된 질병에 걸리거나, 무차별적인 강탈과 학살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현재 애버리진의 후손은 잃어버린 문화와 전통을 복구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입니다. 호주 최대 규모의 국립공원인 카카두 국립공원과 호주 중심부의 울룰루를 방문하면 원주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체험이 가능합니다. 이외에도 주마다 애버리진이 남긴 암각화 등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2. 17~18세기 호주 대륙의 발견

유럽인이 신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항해에 나서던 시기에 호주 대륙이 발견됩니다. 1606, 호주 북쪽을 파푸아뉴기니의 일부로 오인한 네덜란드인이 퀸즐랜드 케이프 요크 반도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 최초 유럽인의 흔적입니다.

1770419일 영국의 제인스 쿡 선장(1728-1779)은 호주 남동부 해안을 탐험한 끝에 해당 지역을 영국령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향후 영국이 자국민을 호주로 이주시키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3. 1788 뉴사우스웨일스의 탄생

1788126, 아서 필립(1738-1814) 제독이 이끄는 최초의 영국 함대가 시드니 코브에 도착하면서 호주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1480명의 이주민 중 절반가량은 죄수였으며, 나머지는 이들을 감시하는 군인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자도 포함되어서 당시로서는 호주 유배가 매우 가혹한 형벌인 셈이었습니다.

아서 필립 제독은 대형 선박도 해안 가까이에 쉽게 정박할 수 있는 시드니 코브가 부두를 건설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나,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24000km를 항해한 이들이 신대륙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시드니 록스 지역에 정착민 마을이 형성되자 영국 정부는 호주를 본격적인 유형지로 결정했고, 1868년까지 약 16만 명에 달하는 죄수를 이송했습니다. 이 죄수들의 강제 노역으로 건설된 도로와 건축물은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의 큰 축을 담당했습니다. 동시에 신대륙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점차 많은 수의 자유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시드니는 활기찬 항구 도시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4. 1829 식민지의 확장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인 퍼스는 영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대륙의 서부를 선점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1827년 찰스 프리맨틀 선장이 스완강어귀에 도착하여 영국령임을 선포하였고, 수개월 후 제임스 스털링 제독이 스완강 유역에 퍼스 건설을 계획하면서, 1829년 독자적인 식민지를 수립하게 됩니다. 향후 1835년 멜버른, 1836년 애들레이드에도 타운이 생기면서 영국의 식민지는 점점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습니다.

 

5. 1851 호주의 골드러시

멜버른 근교의 밸러랫과 벤디고에서 금이 발견되자 전 세계에서 채굴 군이 모여드는 골드러시가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1854년에는 광부를 비롯한 노동자가 영국 총독과 지배계층에 맞서는 유레카 봉기를 일으켜 호주 역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멜버른은 최초의 호주 의회를 유치하는 등 시드니의 강력한 경쟁 도시로 성장합니다.

 

6. 1901 호주 연방의 탄생

190111, 헌법을 제정하고 각기 다른 정부를 지닌 6개의 주가 하나의 국가로 존속하기 위한 호주 연방이 출범합니다. 이후 시드니와 멜버른이 수도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 끝에 완전히 새로운 계획도시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여, 191111일 연방 정부의 새로운 수도를 위한 오스트레일리안 캐피털 테리토리(ACT)가 탄생합니다.

 

7. 1917 1차 세계대전 참전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제1차 세계대전은 호주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당시 인구가 5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호주에서만 42만 명이 참전했으며, 그중 6만 명이 전사하고 15만 명이 이상이 부상당하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와 함께 안작 연합군을 조직하여 참전했던 갈리폴리 전투에서만 무려 1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합니다. 안작 연합군의 갈리폴리 상륙일인 425일을 기념하는 안작 데이는 호주와 뉴질랜드 양국의 우정을 상징하는 중요한 국가 행사이며, 이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걸프전 등 주요 해외 전장에 파병된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기념일로 확대되었습니다.

 

8. 1950년 이후-호주의 발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호주는 지속적인 이민자의 유입과 더불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을 추진하며 급속도로 국력이 신장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원주민의 권리가 대폭 강화되었으며, 1973년 노동당 정권의 고프 휘틀럼 총리가 집권하면서 백인 이외의 인종을 차별하던 백호주의를 철폐하고 아시아인의 이민을 개방하는 다문화 국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현재 이민자의 절반가량은 아시아계 주민으로 사회의 큰 축을 담당합니다. 다만, 최근 들어 합법 이민의 범위를 연간 19만 명에서 16만 명으로 축소하는 등 다시 한번 정책적인 변화가 감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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